콘래드 벤터(Conrad Ventur)의 기획으로 2019 년 7-8 월에 걸쳐 뉴욕의 대안공간 Participant Inc 에서열렸던 《Altered After》전에서, 캘리포니아 기반의 작가 줄리 톨렌티노(Julie Tolentino)는 <하비 Harvey>라는 제목의 작업을 선보였다. 조그마한 화분에 도톰하게 가지를 돋운 선인장을 투명한 플렉시글라스 좌대에 올린 작품이었다. 그 식물은 원래 하비 밀크(1930-1978)가 자신의 집에서 가꾸었던 ‘모체’ 선인장에서 번식한 것으로, 톨렌티노가 재생시킨 것이다. UCLA 의 특별 소장품 부서에서 일하는 아키비스트 친구에게 선물로 받았는데, 그 또한 샌프란시스코에 살았던 하비 밀크의 룸메이트에게서 그 선인장을 얻었던 것이다. 나는 먼저 이 ‘작품’이 얼마나 여러 세대의 사람들을 시적으로 연결하고, 또 다양한 장소들을 거쳐 살아 왔는지에 놀랐으며, 이 식물을 통해 공유된 여러 보살핌과 애정에 큰 감동을 받았다. 밀크의 룸메이트는 밀크가 암살된 이후 수 년 동안 이 선인장을 보살폈으며, 톨렌티노는 그것이야말로 물려받은 앎과 기억이라 여겨 관객과 나누고자 했다.

최하늘, <무제>를 위한 mock-up, 종이위에 잉크, 크기미상

몇 년 전 나는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서울의 퀴어락에서 일련의 일기, 스크랩북, 원고를 발견했을 때였다. 1998 년에 어느 트랜스젠더 여성이 한국의 첫번째 퀴어 잡지 중 하나인 《버디》(1998-2003) 사무실을 방문하면서 기증한 자료이다. 그는 수 개월 전에 텔레비전의 인기 심야 프로그램을 보고 잡지의 존재를 알았다고 했다. 수집 자료는 삶의 고난으로 가득한 일기, 자기 혐오, 성전환의 희망과 함께, 주로 기증자 자신이 되고 싶었던 몸을 그린 자화상을 포함한 그림 여러 점으로 이루어졌다. 그림은 그 자체로 아름다웠지만 그의 손길, 발견되고 기억되고자 하는 욕망, 시공간을 거슬러 사람들을 잇는 자료가 특히 감동적이고 촉각적으로 다가왔다.

퀴어락(한국 퀴어 아카이브)은 2002 년《버디》지의 기증품으로 바탕으로 처음 설립되었으며 한국에서 유일하게 퀴어 역사와 문화에 초점을 맞춘 공공 아카이브이다. 현재 망원동 지역에 자리한 아담한 사무실에는 발간물 수 천 권, 서울퀴어영화제에서 기증받은 700 편이 넘는 영상 등 수백 가지 자료가 있다. 전문 아키비스트가 운영하고 온라인 목록도 충실하지만, 자료를 엄선, 연구, 수집, 전시하는 과정으로써 구축되는 전통적 아카이브와는 다르다. 이곳을 채우는 기증 자료는 연대순으로 틈이 듬성듬성 나 있고,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 조직된 것과 무작위적인 것, 저자가 있는 것과 없는 것 등 서로 모순적인 관념이 두드러진다.

아장맨, <죽었다 깨어난 드랙킹 불알 만지기>, 2019, 디지털 비디오 스틸

《퀴어락》전은 서울에 기반을 둔 젊은 퀴어 작가와 단체 5 인(팀)의 신작을 소개한다. 작품들은 퀴어락에서 몇 달 동안의 조사를 거친 후 제작되었고, 다음의 질문들에 중점을 두었다. 편향된 한국(미술)사의 좁은 관점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한국의 퀴어가 역사에서 삭제되는 결과를 낳고 말았던 담론적, 학술적 폭력에 어떻게 저항할 수 있을까? 한국 퀴어의 역사와 계보를 어떻게 예우하고, 작품을 통해 어떻게 성공적으로 서사를 창출할 수 있을까?

이러한 질문들을 대하는 최하늘의 응답은 스스로를 크게 드러내지 않는 사려깊은 보살핌의 태도이다. 성적 페티시와 환상을 주입한 모호하고 독특한 대규모 조각과 설치로 알려진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는 분체 도장한 철재 책장이라는 간결한 진열 구조를 매체로 하여, 습기로 손상되었던 아카이브의 목재 책장을 교체한다. 단순하고 소박해 보는 이 작품은 소장품을 보존하고 진열할 최적의 방법을 찾고자 퀴어락의 아키비스트 루인과 수 개월에 걸쳐 벌인 대화의 결과이다. 동시에 작가는 책장을 살아있는 퀴어적 생명체로 상정하고 기괴한 손을 이식하기로 함으로써 이 기능적인 조각을 누락된 역사의 신체에 연관된 오브제로 승화시킨다. 손 끝에는 걸린 무지개 빗깔의 유희적인 난초 족자는 사색의 행위였던 한국의 문인화 전통을 전유하면서 선비와 작가, 과거와 현재를 성공적으로 연결한다.

루인, 신문 스크랩(1963, 서울), 2019, 디지털 프린트, 가변크기

《퀴어락》전의 두 여성 작가 문상훈과 아장맨에게 퀴어락 연구는 경이로우면서도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아카이브에 누락된 레즈비언 아티스트들의 삶들 때문이었다. 문상훈은 그의 영상 작업 <전시:레즈비언>(2019)에 부친 작업노트에서 이렇게 토로하기도 했다. 한국에서 활동하는 여성 퀴어 작가는 왜 이렇게 소수일까? 과거에 숱하게 벌어진 레즈비언 작가들의 노력과 시도에도 불구하고, 희소한 기록 사진과 구전으로만 그들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퀴어 여성 작가는 실패했는가? 그런데 퀴어 작가에게 실패란 무엇인가? 조사를 진행하면서 그는 언니네트워크, 읻다, 보지파티 등 한 때 활발히 활약했던 레즈비언 작가 단체들을 보다 면밀히 살핀다. 그 일원이었던 작가들 몇몇을 접촉하고 과거의 역사적인 전시들에서 선보였던 그들의 작업을 별도의 전시(별관 Outhouse, 망원동)에서 진행하는 동시에 그 전시 기록을 담은 영상작업을 《퀴어락》을 통해 선보인다.

문상훈과 마찬가지로 드랙 퍼포먼스 작가 아장맨은 아카이브를 통해 한국 드랙 킹 퍼포먼스의 역사를 추적하려고 했으나, 기록물의 부족으로 난관에 봉착한다. 이에 인터넷에 떠도는 ‘전설적’ 퍼포먼스의 저해상도 이미지 및 잡지 광고와 씨름한다. 종종 한국의 초대 드랙 킹으로 소개되지만 자신 이전에도 숱한 인물들이 있었음을 인지하고 있는 아장맨은 이전 세대의 드랙 킹의 자취를 더듬어 그들을 인터뷰하고 <죽었다 깨어난 드랙킹 불알 만지기, 2019>를 완성한다. 문상훈와 아장맨의 영상 설치 협업은 각자의 영상을 교차 편집하여 혼란과 불연속을 만들어낸다. 이로써 이들의 연구가 성공과 실패, 상실과 기억의 사이에 자리함을 선언하지만 동시에 지워지지 않는 희망을 담는다.

제 1 회 서울퀴어영화제를 소개하는 잡지 CINE21 표지(1998 년 11 월), 퀴어락 소장

LGBTQ 액티비즘의 역사는 이경민의 작업에서 두드러진다. 《플래그 페이퍼》의 공동발행인이자 그래픽 디자이너인 그는 게이 공동체의 HIV/에이즈 예방 또는 약물 남용 문제처럼, 한국 사회에서 터부시되는 주제를 다루어 왔다. 아카이브에서 가장 그의 눈길을 끌었던 부분은 지난 십 수년 간 수집된 시위 팻말이었다. 주로 짧고 굵으며, 명징하지만 재기발랄한 문장과 메시지를 담은 팻말들은 평등, LGBTQ 의 권리, 차별금지법, 동성애 혐오 등과 관련된 수많은 시위와 저항의 증거와 기록이다. 전시에서는 작가는 아카이브에서 선별한 글을 인쇄한 새로운 형태의 피켓들을 선보인다.

김세형은 패션 레이블인 AJO 의 창립자이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수 년 간 한국 패션 산업의 이단아였다. 그의 중성적 의류 라인 아조는 전통적인 치수의 규격을 타파하고 퀴어와 비전문 모델을 기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시를 위해 제작된 스웨트 셔츠는 한국 트랜스젠더의 역사를 기린다. 그는 스웨트 셔츠의 디자인에는 성별이 두드러지 않기에 특히 관심을 둔다고 말한다. 1970 년대 어느 이태원 클럽의 트랜스젠더 한 그룹을 인쇄한 이미지는 1987 년에 발행된 《매춘: 전국 사창가와 창녀실태》라는 책자에서 발췌한 것인데, 여기에는 이들은 여장한 남성 매춘부로 묘사하는 오류가 실려있다. 이 책은 성매매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는데, 여러 오류에도 불구하고 1970-80 년대 트랜스젠더와 게이, 바이 관련 자료도 일부 담고 있어 당시 상황을 유추하는데 유용하다.

루인, 신문스크랩(1964 년 서울), 디지털 프린트, 가변크기

트렌스젠더의 이해와 오해의 역사는 루인의 설치작에도 명백하게 드러난다. 아카이브에서 찾아낸 인쇄된 이미지, 일제 시기의 신문 기사 복사본, 자서전, 포스터, 동영상을 비연대기순으로 뒤섞은 콜라주는 거의 알려진 바가 없는 한국의 트랜스젠더 역사의 재구성을 시도한다. 이 작업은 동시에 신체의 공백, 부재, 오해를 강조한다. 루인은 퀴어락의 아키비스트이자 젠더스터디 분야의 트랜스젠더 연구자로서 행동주의와 학계 모두에 중요한 목소리를 내어 왔다. 또한 동성애적 남성 신체를 넘어 퀴어락을 구축하는 목표를 가지고 아카이브에서 여성과 트랜스젠더 재현을 강력히 옹호해 왔다.

수 개월 전, 《퀴어락》의 작가들은 이전 세대 퀴어가 남긴 흔적을 찾기 위해, 그리고 비평적이며 개인적인 퀴어사를 그리기 위해 퀴어락의 작은 방을 찾았다. 전시작들은 아카이브에 보관된 것뿐 아니라 거기에 부재하거나 잊힌 것에도 의미를 부여하고자 한다. 연구조사와 전시의 과정을 통해 이들은 퀴어락과 한국 퀴어 공동체의 역사에 자신을 새겨넣는다. 이 새로운 역사가 다음 세대 퀴어들에게 전해지고 연구 되기를 바라 본다.

잡지 썬데이서울(1986 년 3 월)의 복사본, 퀴어락 소장

줄리 톨렌티노가 보존한 선인장 <하비>의 경우처럼, 《퀴어락》의 작품들은 한국 퀴어의 비가시적인 기억이 한국 안팎에 있는 다양한 세대의 작가, 활동가, 학자들의 보살핌과 창의적 잠재력으로 지탱되고 보존되었음을 전해 준다. 이들은 시간과 공간을 가로질러서 지금 그리고 미래에 대해 얘기한다.

이강승
Open Call Exhibition
뉴욕 apexart 국제공모 선정 전시 (한글번역: 김실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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