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0월 29일, 서울의 두 거리에서 서로 다른 행렬이 줄지어갔다. 한 마을에서 개최된 작은 퀴어문화축제에선 ‘퀴어’라는 단어 자체를 처음 듣는 주민들이 흥겨운 풍물놀이에 이끌려 모였고, 잠시나마 서로가 함께 춤추며 자긍심을 나누는 순간이 만들어졌다. 축제가 끝난 밤, 일부 참석자들은 흥을 이어가기 위해 이태원 핼러윈 파티로 향했고,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참혹한 군중 사고와 직면하게 되었다. 공식 발표보다 빠르게 참사 소식이 퍼지면서, 많은 이들은 이태원에 간 친구들에게 다급히 연락을 돌렸고, 피해자 명단에서 그들의 이름이 호명되지 않기를 간절히 빌어야 했다.
159명의 생이 희생된 이태원 참사는 사회에서 소외된 이들의 이름이 어떻게 체계적으로 지워지는지 여실히 드러냈다. 한국의 유일한 LGBTQ+ 허브로 알려진 이태원이었음에도, 공식보도 어디에도 퀴어 희생자의 숫자는 표기되지 않았다. 국가가 주도한 애도에서 이름과 얼굴은 지워졌으며, ‘이태원 희생자’들은 익명의 통계로 쉽게 전환되었다. 외국인 피해자 유족들은 관료적 장벽과 언어적 한계에 부딪혔으며, 기본적인 정보도 충분히 보장받지 못했다.
zozo, remember, 2025, website, dimensions variable
이러한 은폐는 역사의 흐름에서 결코 새로운 현상이 아니다. “1948년 제주 4.3 사건”에서 “2014년 세월호 침몰 사고”에 이르기까지, 집단적 죽음의 과정은 늘 체계적 방치와 외면을 동반했고, 특정 공동체가 공적 추모의 자리에서 배제되는 사회 구조로 굳어졌다. 전 세계적으로 전쟁, 재난, 사회적 폭력은 ‘기억되는 자’와 ‘망각되는 자’를 끊임없이 구분 짓는다. 끝없는 죽음의 반복 속에 남겨진 이들은 해결되지 않은 슬픔을 안고 살아가며, 이는 신체적,심리적 고통으로 나타난다. 누구에게나 죽음은 보편적이지만, 사회적,정치적 차원의 슬픔과 애도는 결코 평등하지 않다.
전시를 기획한 김민선과 Sam Blumenfeld에게 슬픔은 개인적이면서 동시에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문제이다. 상실에 대한 개인적 경험과 그 슬픔을 둘러싼 문화적 배경과 현상에서 출발한 본 전시는, 한국, 칠레, 미국 등 다양한 국적과 정체성을 지닌 작가들과 함께 한다. 이들은 이주, 상실, 전환, 커밍아웃 전 삶에 대한 기대의 상실 등, 각자의 고유한 내러티브를 퍼포먼스, 다큐먼트, 설치, 조각 등 다양한 매체로 풀어낸다. 모든 작업은 상실이 개인 안에서 일으키는 변화를 바탕으로, 특히 ‘퀴어의 시선’으로 애도와 돌봄의 공간을 구축한다.
Jun!yi Min, Our Belly is a Mirror, 2025, 16mm performance film, 7:48
Jun!yi Min은 싱가포르 출신으로 브루클린에 거주하며 퍼포먼스 아티스트, 영화감독, 큐레이터, 교육자로 활동한다. 그는 일상의 평범한 몸짓을 증폭시켜 시적인 마찰을 만들어내고, 이를 통해 일상 속에 내재된 부조리를 교란하고 드러낸다. Jun!은 트랜스의 시선을 통해 ‘엇박자 난 성장기(coming-of-age)’를 탐구한다. Jun!은 엘리엇 헌들리 스튜디오(Elliott Hundley Studio), 베스트 프랙티스(Best Practice), 민게이 미술관(Mingei Museum) 등에서 전시 및 퍼포먼스를 선보였으며, 샌디에이고의 브레드 앤 솔트 갤러리에서 열린 <머티리얼 인티머시스(Material Intimacies)>와 민게이 미술관에서 열린 <퀴어링 더 테이블(Queering the Table)>과 같은 퍼포먼스 이벤트를 기획했다.
Ru Kim, For if the question concerns the Land, 2024, ceramics installation, dimensions variable
Ru Kim은 퍼포먼스와 영상 설치를 통해 가부장적, 제국주의적, 식민지적 폭력에 예술이 어떻게 저항하고 재전유하는지 질문한다. 언어, 문화, 정체성의 경계를 넘나들며, 최근에는 ‘비인간적 목격자’의 관점, 하이드로-페미니즘적 시선으로 본 물의 전략, 한국 퀴어 역사의 기록과, 서구 시선에 의해 만들어진 “아시아”의 역사성에 주목하고 있다. 이번 전시의 출품작은 산 훌리오와 뱀의 신화를 통해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이룬 순교의 의미를되묻는다.
Camila Pizarro, La entrevista, 2025, single channel video with installation, dimensions variable
Camila Pizarro는 이민자이자 유목민, 예술가로서 늘 소속과 배제의 경계에 놓여 있다. 그의 작업은 고통의 기억, 고국의 부정, 할머니와의 이별 등 개인적 상실이 현재에 어떤 의미로 자리 잡는지 풀어내며, 작가에게 예술은 곧 치유이자 저항, 재구성의 힘임을 말한다.
Soeun Bae, Liquid Arrangement, 2024, silicone, carpet, concrete, air controller, glass, ceramic, steel, flock, tubing, PLA, epoxy, foam, digital print, cast aluminum, my hair, mats, dimensions variable
배소은은 뉴욕을 기반으로 조각, 테크놀로지, 퍼포먼스를 활용해 ‘신체의 존재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그의 작업은 돌봄, 섹슈얼리티, 생산의 정치학을 다룬다. 주변화된, 취약한 신체—페미닌, 퀴어, 유색인종—는 해체와 기계화, 대상화 과정을 거치며 효율과 최적화의 잠재력을 갖는 하이브리드 신체로 재창조된다.
Black Jaguar, Ghost sunset, single channel video, 2022, 7:59
흑표범은 예술가의 몸으로 한국 사회 내 다양한 소수자의 경험을 가시화하는 작업을 해왔다. 초기 퍼포먼스 작품은 자신의 몸을 과감히 드러내는 것으로 시작해(<한낮의 목욕>(2011)), 점차 자신을 한국의 공적 기억의 장에 새기는 방식으로 진화했다. (2016)는 세월호 유가족의 목소리를 관객이 마주하게 한 퍼포먼스로 기억의 구조를 재조명했다. 이번 전시의 작품은 제주도 강정에 미군기지가 들어서며 파괴된 환경, 공동체, 그리고 토착적 삶의 상실을 담았으며, 지속적인 저항과 애도의 몸짓의 가능성을 확장한다.
뉴욕 출신으로 도쿄, 프랑크푸르트, 런던 등지에서 성장한 K Rawald(USA)는 다문화, 젠더플루이드, 혼혈, 뉴로다이버전트 콰이어 아티스트이다. K의 작업은 ‘타자성’의 주체적 재전유, 경계의 혼종성, 새로운 미래와 현재-과거의 상처를 오가는 과정에서 상실과 기억의 공간을 만든다. 이번 설치작업에는 가족 상실, 미국 대선 이후의상실을 교차시킨다.
이정식은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시각예술의 형식적 접근을 다양한 매체로 실험하며, 피상적인 시선을 비판하고 주제에 서사적 밀도를 더하려 한다. 김형주는 예술 생산의 조건과 시각적 재현의 윤리를 탐구하며 영화, 전시 영상, 아카이빙을 넘나들고, 동시대 작가들과 협업해왔다. 두 작가의 협업으로 제작된 <요코하마에서의 춤 2008>은 외국에서 침묵된 한 퀴어성노동자의 죽음을 추적하며, 작품 자체가 그를 애도하기 위한 하나의 의례로 작동한다.
On Lee, Absolute Dating, 2023, single channel video, 21:04
이온은 서울과 쾰른을 기반으로 활동하며, 디아스포라와 디스포리아의 경계 위에서 신체를 확장 가능한 매체로 탐색한다. 퍼포먼스와 연극적 자아의 수행성을 기반으로, 가상 환경 속에서 신체의 흐름과 존재 방식을 실험한다. 이번 전시에서 연속 상영되는 두 작품은 단일한 신체로 환원되지 않는 존재의 상태를 시각화하며, 확장된 지각을 통해 형성되는 새로운 연결을 감각적으로 제시하며 퀴어한 애도의 감각과 연대를 제안한다.
zozo, Journey with the Inevitables, 2025(re-edited, originally created in 2023), single channel video, 33:47
조은후(zozo)는 소외와 비정상성에서 비롯한 언어적 공백을 탐색하고 감각화하는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영상, 텍스트, 회화, 설치를 넘나들며 폭력, 죽음, 광기, 불길함, 그리고 사회로부터 금기기시된 퀴어의 삶과 신체를 기록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죽음에 대한 개인적 서사와 한국 사회의 여성혐오적 폭력에 대한 체험을 담아내어 새로운 의례로 재구성한 작품을 선보인다.
이번 프로젝트는 한국 만신의 의례(무속 의례), 유대교 미니안(공동 애도 의례)처럼 전통적 애도 구조를 퀴어적으로 재해석한다. 가부장적, 제도적 애도 프레임을 허물고, 혼란스럽고 파편적이며 규범 밖의 애도가 가능하도록 새로운 커뮤니티를 만들기를 기대한다. 그리고 ‘나쁜 애도’란 실패가 아닌 저항의 방식임을 제안한다.
전시명 ‘Bad Lament 나쁜 (애)도’는 규범적 애도의 질서에 도전하며, 사회적 강요와 기대에서 벗어난 슬픔마저 존엄한 권리임을 주장한다. 공식적 애도의 장에서 소외된 목소리들에게, 애도는 실패가 아니며, 때론 ‘나쁜 애’가 실천하는 애도야말로 우리가 함께 존재함을 새기고, 상실을 새로운 집합적 기억으로 전환하는 자리임을 선포한다.